부정해봤댔자 예술의 욕망은 늘 삶이(었)다. 예술을 아버지 콤플렉스, 소외, 거세공포, 편집증으로 점철케 해 온 것도 삶이다. 불만과 반항심에 젖어있는 청소년 같은 예술, 그리고 그 ‘단절’의 가설은 오히려 삶에 대한 예술의 애증을 반증해 왔을 뿐이다. 예술은 여전히 삶을 향한 대립각, 긴장관계라는 존재론적 가설 속에서만 스스로를 설정할 수 있다.
예술의 황금기를 허락했던 실존과 탐미의 낯익은 대결을 보라. 실존이 급박할 때 자구나 맞추고 있을 순 없고, 깊이 형식을 추구할 땐 일상이 한낮 번잡스러움에 지나지 않는다는, 미(美)를 추방하는 실존과 따라서 그것을 등져야 하리라는 미의 언설.....
해서, 일상으로 향하는 교각을 수수고 배를 불사르라 외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삶을 문제투성이로 보건 존재 가능한 최선의 이상향으로 읽건, 스스로를 삶으로 향하는 나룻배로 보건 나룻배의 파괴로 정의하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예술이 아버지-의붓아버지건 자애로운 부친이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고, 아버지와의 이 (콤플렉스적)관계 속에서만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테면, 예술은 아버지 안에서만 스스로를 불러낼 수 있는 아들, 즉 삶을 확장할 때에만 스스로를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최근 박태동 세계의 동향을 이해하는 데도 한 흥미로운 참조가 될 수 있다.
박태동은 자신에게 지난 수년 간의 삶은 지난한 것 이었다 했다. 모든 사회적 활동들을 중단하진 않았지만, 혼돈스러웠고, 의미가 고갈된 듯 한 무력한 시간을 보내야 했으며, 특히 ‘창작작업’에 몰입할 수 없었다고 했다. 박태동은 이를 자신이 어떤 먼, 그러나 불가피했던 길을 돌아 다시 자신의 자리에 돌아와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들은 바로 그 돌아옴, 회구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문맥을 공유한 것들이라 했다.
작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삶과 예술 사이의 단속점, 붙었다 끊어지거나 끊어졌다 다시 붙는 지점, 직류와 교류가 교차하는 사(死)구간, 종말과 출생의 접점, 그리고 바로 그 곳에서 삶과 예술의 관계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한 지점을 떠올렸다. 일테면, 삶에서 예술로, 미에서 일상으로 전환되면서 결국 삶의 비약적 확장이 발생하는 순간, 그것이 오랫동안 결여되었을 때, 예술은 고작 직업적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사회적 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고 마는 그러한 순간!
내 생각이 맞다면 박태동은 지금 막 이 같은 순간을 통과해 온 것임에 틀림없다. 이는 작가가 이번 전시를 마치 잠시 전에 일어났던 어떤 갑작스런 파열의 현장 같은 것으로 만들려 하는 데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이 파멸의 현장은 그가 아직 정리할만 한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 한, 근접한 과거의 어떤 격한 경험을 다루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이 힘, 격한 파열, 요동하는 힘의 불안정성, 아직 용기에 담아지지 않은 에너지로 밖엔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하고 싶지 않은-, 이 힘이야말로 삶에서 예술로 전환하는 단속점에서 파생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당분간 조절되기 어렵고 억압되어선 안 될 이 힘에 의해 그의 세계는 선뜻 야생의 정원에 다가선다. 작가가 원하는 전시는 더 이상 한 두 개의 우량수종으로 단정하게 꾸며진 인위적 정원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온 잡목 같은 조각, 그리고 태생적으로 정방형 따위의 재단을 용인할 수 없는 자연의 들녘 같은 전시, 이야말로 박태동의 사유를 매혹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국 문제는 전시를 위선에 찬 기념식수처럼 식상에빠진 패턴으로 전락시키는 형식주의, 또는 기계주의적 접근이다.
박태동의 이번 전시는 많건 적건 흐트러져 있다. 전술했듯, ‘의도된 무질서’ 보다는 ‘질서 이전’으로 읽혀져야 더 옳을 그것들은 고정되어 있는 대신 파동적인 질서를 대변하고 있다.
그것들 하나하나는 불완전한 조각이거나 터무니없이 조각적이다. 철자법에 구애받지 않는 단어들 같기도 하다. 그것들은 독립성을 결여하고 있거나 과도하게 독립적이다(튄다). 그것들 상호간의 관계는 규범없이 불안하게 열려있다. 전시를 하나의 문장에 비유한다면, 이번의 것은 아직 교열을 마치지 않은 그것임에 틀림없다. 이는 주목해야 할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제까지 박태동의 세계는 군더더기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세심한 정리, 치밀한 내적 정련과정을 거친 정제된 언어들, 압축된 그러나 서정적인 리듬감으로 주조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전에 물성(物性)은 그의 세계의 중심 축 같은 것이었다. 그의 세계가 지나치게 서정편향으로 기울어지거나 문학적 텍스트화 하지 않도록 지탱하는 지지대이기도 했다. 작가는 누룩처럼 번져나가는 감정과 단어들의 운명적인 결함인 가벼움을 12mm 두께의 철판으로 조절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제된 언어, 균형은 그의 세계에서 더 이상 필연적인 요인이 아니다. 이제 박태동은 그토록 정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더 가벼워지거나 한 쪽으로 치우쳐도 무방할 것이다. 물성에 관해선 엄격했지만, 그의 사유는 이제 일련의 반물성(反物性), 곧 알루미늄의 표면이 주는 매력적인 은빛의 광택과 뒤섞인다. 이 적절하게 반짝거리는 은빛 광택은 그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물성뿐 아니라 내러티브까지 삭제해 버리는 효과가 있다. 이 은은하고-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잘난 척 하지 않는-고상한 광택은 반물성적일 뿐 아니라, 반조각적이며, 도시적이고 여성적이며 오로지 자기참조족이다. 이 광택으로 자신의 반신상을 채색했을 때, 이 반물성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는데, 그것은 이제까지 지나치게 자신을 규정하고 있었던 과도한 서정성을 완화, 견제하는 것이었다. 이 광택으로 인해 반신상의 표정에 베어있던 멜랑코리는 현격하게 중화된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꽃다발은 자신보다 더 위엄있는 검정 조각대 위에서 의도하진 않았지만 더욱 반동적인 담론이 된다. 이렇듯, 박태동의 세계에선 전통적인 기호가 뒤집히고, 상쇄적인 질서가 병렬된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풍경은 기꺼이 질서와 안정 밖의 야생이다.
해방과 자유의 선언이 궁극은 아닐지라도, 박태동의 세계는 그것들을 동반한다. 실험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의 전시는 일련의 실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 자신에게 낯설었던 개념에 자신을 열어 가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진부해 보이는 인물소묘에 여전히 이끌린다. 더군다나 재료나 물성도 그에게 항구불변의 정수가 아니다. 석고, 나무, 철, 알루미늄이 있고, 오브제와 반(反) 오브제, 설치적 개념이 병존한다. 완전히 파열적인-혹 해체적인-형태들을 수용하는가 하면, 여전히 사각형, 정방형을 내포하는 고답적인 추구도 있다. 역시 그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모든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는 이제 제한받지 않는다. 자신을 제한하지 않은,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지 않은 결과다.
“외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시사하듯, 그의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덜 콤플렉스적이다. 작가가 ‘거기’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조각도 콤플렉스가 낳은 규범들의 총체에서 그 무엇이 다르랴, 해서 박태동은 ‘마치 처음인 것처럼’ 다시 혼란스러운 삶으로부터 추동되는 자신의 이 비약을 ‘축제’라고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축제를 그리워하지 않는가?
작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삶과 예술 사이의 단속점, 붙었다 끊어지거나 끊어졌다 다시 붙는 지점, 직류와 교류가 교차하는 사(死)구간, 종말과 출생의 접점, 그리고 바로 그 곳에서 삶과 예술의 관계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한 지점을 떠올렸다. 일테면, 삶에서 예술로, 미에서 일상으로 전환되면서 결국 삶의 비약적 확장이 발생하는 순간, 그것이 오랫동안 결여되었을 때, 예술은 고작 직업적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사회적 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고 마는 그러한 순간!
내 생각이 맞다면 박태동은 지금 막 이 같은 순간을 통과해 온 것임에 틀림없다. 이는 작가가 이번 전시를 마치 잠시 전에 일어났던 어떤 갑작스런 파열의 현장 같은 것으로 만들려 하는 데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이 파멸의 현장은 그가 아직 정리할만 한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 한, 근접한 과거의 어떤 격한 경험을 다루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이 힘, 격한 파열, 요동하는 힘의 불안정성, 아직 용기에 담아지지 않은 에너지로 밖엔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하고 싶지 않은-, 이 힘이야말로 삶에서 예술로 전환하는 단속점에서 파생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당분간 조절되기 어렵고 억압되어선 안 될 이 힘에 의해 그의 세계는 선뜻 야생의 정원에 다가선다. 작가가 원하는 전시는 더 이상 한 두 개의 우량수종으로 단정하게 꾸며진 인위적 정원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온 잡목 같은 조각, 그리고 태생적으로 정방형 따위의 재단을 용인할 수 없는 자연의 들녘 같은 전시, 이야말로 박태동의 사유를 매혹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국 문제는 전시를 위선에 찬 기념식수처럼 식상에빠진 패턴으로 전락시키는 형식주의, 또는 기계주의적 접근이다.
박태동의 이번 전시는 많건 적건 흐트러져 있다. 전술했듯, ‘의도된 무질서’ 보다는 ‘질서 이전’으로 읽혀져야 더 옳을 그것들은 고정되어 있는 대신 파동적인 질서를 대변하고 있다.
그것들 하나하나는 불완전한 조각이거나 터무니없이 조각적이다. 철자법에 구애받지 않는 단어들 같기도 하다. 그것들은 독립성을 결여하고 있거나 과도하게 독립적이다(튄다). 그것들 상호간의 관계는 규범없이 불안하게 열려있다. 전시를 하나의 문장에 비유한다면, 이번의 것은 아직 교열을 마치지 않은 그것임에 틀림없다. 이는 주목해야 할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제까지 박태동의 세계는 군더더기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세심한 정리, 치밀한 내적 정련과정을 거친 정제된 언어들, 압축된 그러나 서정적인 리듬감으로 주조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전에 물성(物性)은 그의 세계의 중심 축 같은 것이었다. 그의 세계가 지나치게 서정편향으로 기울어지거나 문학적 텍스트화 하지 않도록 지탱하는 지지대이기도 했다. 작가는 누룩처럼 번져나가는 감정과 단어들의 운명적인 결함인 가벼움을 12mm 두께의 철판으로 조절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제된 언어, 균형은 그의 세계에서 더 이상 필연적인 요인이 아니다. 이제 박태동은 그토록 정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더 가벼워지거나 한 쪽으로 치우쳐도 무방할 것이다. 물성에 관해선 엄격했지만, 그의 사유는 이제 일련의 반물성(反物性), 곧 알루미늄의 표면이 주는 매력적인 은빛의 광택과 뒤섞인다. 이 적절하게 반짝거리는 은빛 광택은 그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물성뿐 아니라 내러티브까지 삭제해 버리는 효과가 있다. 이 은은하고-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잘난 척 하지 않는-고상한 광택은 반물성적일 뿐 아니라, 반조각적이며, 도시적이고 여성적이며 오로지 자기참조족이다. 이 광택으로 자신의 반신상을 채색했을 때, 이 반물성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는데, 그것은 이제까지 지나치게 자신을 규정하고 있었던 과도한 서정성을 완화, 견제하는 것이었다. 이 광택으로 인해 반신상의 표정에 베어있던 멜랑코리는 현격하게 중화된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꽃다발은 자신보다 더 위엄있는 검정 조각대 위에서 의도하진 않았지만 더욱 반동적인 담론이 된다. 이렇듯, 박태동의 세계에선 전통적인 기호가 뒤집히고, 상쇄적인 질서가 병렬된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풍경은 기꺼이 질서와 안정 밖의 야생이다.
해방과 자유의 선언이 궁극은 아닐지라도, 박태동의 세계는 그것들을 동반한다. 실험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의 전시는 일련의 실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 자신에게 낯설었던 개념에 자신을 열어 가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진부해 보이는 인물소묘에 여전히 이끌린다. 더군다나 재료나 물성도 그에게 항구불변의 정수가 아니다. 석고, 나무, 철, 알루미늄이 있고, 오브제와 반(反) 오브제, 설치적 개념이 병존한다. 완전히 파열적인-혹 해체적인-형태들을 수용하는가 하면, 여전히 사각형, 정방형을 내포하는 고답적인 추구도 있다. 역시 그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모든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는 이제 제한받지 않는다. 자신을 제한하지 않은,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지 않은 결과다.
“외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시사하듯, 그의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덜 콤플렉스적이다. 작가가 ‘거기’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조각도 콤플렉스가 낳은 규범들의 총체에서 그 무엇이 다르랴, 해서 박태동은 ‘마치 처음인 것처럼’ 다시 혼란스러운 삶으로부터 추동되는 자신의 이 비약을 ‘축제’라고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축제를 그리워하지 않는가?
2005년, 심상용 (미술사학, 조형예술학 박사, 서울 대학 교수)